정보화는 앞섰는데, AI에선 실종… 이대로 둘 것인가

콘텐츠·에너지·제조업까지… AI 대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새한일보 민정기 기자 | 세계 최대 인공지능 행사 ‘2025 세계 AI 대회(WAIC)’가 중국 상하이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AI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이번 행사에는 구글, 아마존, 테슬라 같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은 물론, 화웨이, 바이두, 알리바바 등 중국 대표 기업까지 총출동했다.

대형언어모델(LLM) 40여 종과 휴머노이드 로봇 60여 종이 공개되었고, ‘글로벌 최초’, ‘중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술만 해도 백 건이 넘었다.

하지만 그 뜨거운 흐름 속에서 정작 대한민국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한때 ‘IT 강국’을 자처했던 한국은 주요 참가 기업 명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웠고, 세계적 석학과 튜링상 수상자들이 모인 행사장에서도 한국 대표의 모습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정보화는 앞섰지만, AI에서는 뒤처졌다’는 냉정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물론 국내에도 뛰어난 연구자와 유망한 기술 기업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발적이고 제한된 성공일 뿐, 국가 차원의 전략과 정책, 생태계 조성, 그리고 기술과 산업을 연결하는 응집력 면에서는 여전히 취약하다.

정부가 내세우는 “100조 투자”나 “AI 3대 강국 도약” 같은 선언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현장의 분위기는 냉소적이다. “WAIC에 가면 미국과 중국 기술력에 기가 눌린다”는 업계의 한숨은 과장이 아니다.

다행히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210억 원 규모의 2차 추경을 편성해 ‘케이-콘텐츠 AI 혁신 선도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협업해 콘텐츠 산업 전 주기에 AI를 도입하고, 기획부터 제작·유통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사업 모델 창출에 나선 점은 긍정적이다. 콘텐츠는 대한민국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대표 자산이며, 그 자산을 움직일 두뇌가 이제 AI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AI는 콘텐츠에만 머무를 수 없다. 에너지, 제조업, 물류, 국방 등 국가의 기반을 이루는 산업 전반에서 AI는 생존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출범시킨 「제조업 AI 확산 TF」와 「RE100 산단 조성 TF」는 그 신호탄이다. 제조업을 AI로 고도화하고,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기준에 부응하겠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방향이 옳다고 길이 스스로 열리지는 않는다.

기술이 국민의 삶과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보의 전달 → 이해의 확산 → 공감의 형성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언론의 역할이 있다. 기술과 정책, 산업과 사회를 연결하는 공론장의 허브로서 언론은 이 전환의 물꼬를 트는 데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자동화 기술이 아니다. 에너지 수요 예측, 전력망 최적화, 탄소 감축, 스마트공장 설계, 콘텐츠 지능화까지, AI는 이미 모든 산업의 심장에 들어와 있다. 이 흐름을 지금 놓친다면, 산업화 이후 최대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걷어찬 꼴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전반에는 여전히 ‘AI는 먼 미래의 이야기’라는 안이한 인식이 만연하다. 현실은 이미 다르다. AI는 연구개발(R&D)과 상용화 단계를 넘어, 정책 결정, 산업 구조, 교육 현장, 심지어 일상 속 개인 선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의 AI는 기술이 아니라 문명 전환의 인프라다.

그러나 한국의 AI 정책은 여전히 산업부, 과기정통부, 문체부 등 개별 부처 중심의 분절된 체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은 백악관 산하 국가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부처 간 협업을 이끌고 있고, 중국은 2030년 세계 1위 AI 국가를 목표로 범부처 일원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부처 간 예산경쟁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국가 전략 리더십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기술을 설계하고, 사회와 연결하며, 인류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융합형 AI 인재를 길러야 한다. 국제공동연구와 글로벌 AI 동맹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세계 최고 기술이 모이는 AI 대회에서 한국의 이름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AI 대전환의 골든타임이다. 더는 “우리는 늘 늦게 따라간다”는 말로 자조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 학계와 언론이 함께 전략을 세우고, 속도를 맞추며, 국민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선도자냐, 추격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냐, 소멸이냐’가 걸린 시대다.